엄마도 그 시절은 그 나이의 파마머리 군집들처럼 누나는 음악 학원으로, 남자 아이인 나는 태권도 학원에 각각 보내주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으나 윗집 지석이도, 3층의 민호도 목 때로 깃만 시커먼 태권도 도복을 입고 쭈쭈바를 빨아댔으니까. 엄마는 유난히 몸집이 작았던 아들이 정신과 육체 단련에 좋다는 태권도 학원이라도 보내면 좀 나아질까 하는 작은 기대 같은 걸 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무도에 뜻이 없었던 나는 호랑이 사부님을 피해 학원을 땡땡이치기 일 수였고 덕분에 배움에 욕심이 많았던 누나가 동생의 원비를 대신해 다녔던 추억이 있다.
노란 띠도 벗어나지 못한 아들의 손을 붙잡고 엄마는 동네에서 제일 큰 수영 스포츠 센터로 데려갔다. 물을 만나 신이 난 아이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고함을 치는 소리가 수영장의 둥근 돔에 부딪혀 쩌렁쩌렁했다. 그리고 시큰하게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아주 짧은 상담을 끝내고 나는 내 이름이 새겨진 작달막한 가방을 받았다. 옆구리에 달랑 끼고 다니면 좋을 만한 크기의 가방은 돌고래 스포츠라는 이름이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큰 슈퍼에서 일을 했던 엄마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으면 주인이 식구들 먹이라며 들려주던 곽 우유 중 한 팩을 꼭 돌고래 스포츠 가방에 챙겨 넣어주었다. 정수야, 수영은 잘 배워둬라. 사내놈이 망망대해에 떨어지면 제 몸 간수는 제가 해야지.
갑자기 망망대해라니, 엄마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줄곧 육지에 살았던 도시 촌놈인 내가 바다 한가운데 떨어질 일이 어디 있다고. 나는 이게 다 저번 주 주말의 명화에서 틀어주었던 영화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오, 빌어먹을! 제발! 분명 파란 눈에 오뚝한 콧날의 외국인들인데 그들의 입에선 한껏 격양된 한국말들이 튀어나왔다. 힘없이 남자 주인공이 해일에 휩쓸리자 엄마는 소매로 슬그머니 눈물을 훔쳐냈다. 팬티 바람으로 소파에 기대어 꺽꺽 코를 곤하게 고는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감상이었다. 한 남자의 무인도 탈출기를 그린 영화에 엄마는 대단한 감명을 받았고, 그 여운은 내가 수영반을 다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이 꼴을 본다면 엄마는 혀를 쯧쯧 차며 그때 냈던 원비가 아깝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분명 조카들도 물장구를 치던 낮은 풀이었는데 몸은 수심 5m의 다이빙 장에 빠진 것처럼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뒤로 자빠지는 바람에 마음의 준비도 없이 온몸의 구멍으로 밀려 들어온 수영장 물이 쓰렸다. 고막을 찢을 것처럼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끊기고 꾸르륵 하는 귀 먼 소리만 들렸다. 등뼈가 바닥에 닿은 것도 같다. 드디어 끝까지 내려왔구나. 나는 이대로 잠겨 죽는구나.
그때, 일렁이는 물결을 작살로 내리치는 것처럼, 커다란 코앞으로 우악스럽게 내리 꽂혔다.
*
“상준아, 서연아 그만 울어.”
체온으로 덥혀진 미지근한 물을 꿀럭 토해내며 제일 처음 한 말이었다. 팔다리를 붙들고 볼썽사납게 우는 조카들의 울음소리가 매미처럼 시끄러웠다. 죽은 것처럼 늘어져 끌려 나왔더니 그래도 제 핏줄이라고 악을 쓰며 울어 젖혔다. 물먹은 솜같이 무거운 팔을 들어 허우적거리니 으앙하고 토끼 같은 아이들이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보호자로 쫓아온 삼촌이 물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으니 놀란 만도 했다. 이대로 얼마나 기절을 했을까? 아이들의 눈두덩이 호박꽃 아래 작게 맺히기 시작한 애호박만큼 부어올라 있었다. 홉뜬 눈으로 쌍심지를 세울 누나의 모습이 선연해서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늘만 해도 뒹굴거리는 나에게 누나는 그러지 말고 애들이라도 놀아 주라며 돈 몇 만 원을 바지 주머니 춤에 넣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맞아 물 놀이장이 개장되었으니 거기라도 바지런히 다니라는 명령조의 부탁이었다.
엄마나 누나는 태생이 부지런한 사람들이라 널은 다시마처럼 누워 빵을 굽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도망쳐온 강원도 산골이었지만 여름 더위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찜통 같은 숨 막히는 더위는 아닐지라도, 머리 위로 떨어지는 높은 고도의 태양은 그 어느 지역의 여름 불볕보다 억셌다. 매형은 정선 카지노의 딜러였다. 언뜻 들으면 편견부터 잔뜩 집어먹을 직업이었지만, 그건 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법한 말이었다. 매형의 수입은 공무원만큼이나 일정했고, 팁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짭짤했다. 거의 숨겨진 공무원이나 다름없는 직업군을 누나가 용케 알아본 것이다. 처음엔 매형의 직업을 언짢아하던 부모님도 시댁에 척척 용돈을 안겨드리며 듬직하게 구는 사위를 점점 금두꺼비처럼 대했다. 나중에 가서는 그래두 정아 남편 직업이… 하고 끝말을 어물대는 사촌에게 핏대를 세우며 카드가 잘못이냐, 노름하며 차 팔고 집 팔아먹는 머저리들이 등신 팔푼이들이 잘못이지! 하며 목청을 대신 드 높여줄 정도였으니.
그런 사위 사랑 덕분에 엄마는 방학만 되면 누나가 사는 강원도로 도망치듯 내려가는 나에게 순하게 말했다. 가서 김서방한테 꼬박꼬박 잘 굴고 얌전히 잘 다녀오거라. 그래서 나는 오질나게 말을 안 듣는 미운 연년생들을 데리고 이 누추한 어린이 야외 풀장에 올 수밖에 없었다.
“상식이 없어요?”
“예?”
“없냐고 상식이. 그런 삼선 쓰레빠 같은 거 끌고 풀장 주변 걷다가 머리 깨져 뒤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퉁명스러운 줄 알았더니 상스럽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아직도 폐 속에 찬 물이 덜 빠졌는지 구역질이 나와 죽겠는데 다짜고짜 책임을 전가한다. 풀장에 당도하자마자 조카들은 내 주리를 틀 모양으로 이단 분리가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아이들의 살결이 약하니 꼭 물놀이 전에 선크림을 발라주라던 누나의 당부를 받은 내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주머니에 얼레벌레 넣어온 선크림을 흔들며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수영장 주변으로 흐른 물웅덩이를 밟고 중심을 잃었다. 미끄러운 고무 슬리퍼가 휘청 한 건 당연지사였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죽다 살아나온 손님에게 눈을 부라리며 다시 뒤지라는 둥 폭언을 쏟아내는 이 남자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릴 순 없었다. 나 박정수, 빡 돌면 그 새끼 모가지를 수건처럼 비틀어 짤 힘은 없어도, 머리털은 죄 조사 버릴 지구력은 있다.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모나게 눈을 흘기는 남자에게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공지했어요? 바닥이 미끄러우니 슬리퍼 신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댁네 영업장에서 나한테 입 뻥끗 주의 준 적 있냐고. 뭐, 뒤지고 싶어? 지금 말 다 했어요?
“아니, 상식이…”
“아니는 무슨! 수영장 오는데 수영복이랑 수영모만 챙기면 됐지, 무슨 상식까지 챙겨오래? 그래. 나 상식 없는 손님인데 어쩔 거야? 방금 뒤질 뻔한 거 피해 보상은 어떻게 해줄 거냐고. 여기 배상책임 보험은 가입되어 있는 업장 맞아요? 나 지금 구청 가서 확인해 본다?”
말하다 보니 꼴이 받아 언성이 자꾸 커졌다.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뜬다는 옛말이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언제가 해외토픽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경고문을 설치하지 않은 미국 놀이공원이 억대의 소송에서 패소한 사례까지 들먹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앞에 쫄딱 젖은 빨간 반바지의 남자가 주춤하는 기색이 보였다. 꼭 사과까지 받아내리라. 갑자기 물에 빠지게 된 내 오늘 일진에 대한 분풀이까지 합세해 기세 좋게 상황을 몰아붙였다. 자해 공갈단이 찾아왔다가 형님 하고 돌아갈 만큼, 나는 온 힘을 다해 진심이었다.
*
“정수 삼촌.”
“왜.”
“너무 뭐라고 하지 마. 그래도 그 오빠가 물에 빠진 삼촌 구해주고 목숨도 살려줬는데.
아홉 살 김서연이 쓰는 단어들은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한 부분이 있었다. 언어 구사가 한 살 많은 제 오빠 상준이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굵직했다. 목숨. 이제 겨우 9년 차의 솜털이 논하기엔 너무 무거운 단어였다. 누나의 서늘한 언어 습관이 아이의 말투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게 신경 쓰였다. 꽝꽝 얼어 용을 쓰는 상준이의 초코 쭈쭈바를 먹기 좋게 주물러 풀어주며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결국 주변을 의식한 남자는 나를 한적한 탈의실로 끌고 들어가 미적지근한 온도로 사과했다. 받아낸 사과가 시원 치 않아 다시 한번 대판을 준비하는데, 밖에 있던 상준이 뛰어 들어왔다.
‘삼촌! 김서연이 집 가쟤. 엄마가 빨리 들어오라고 전화했대.’
물주, 아니 누나의 명령이 있었단다. 금방이라도 쌈닭처럼 맹렬히 달려드려는 기세를 접고 대신 알바의 번호를 받아왔다. 김희철, 010-****-****. 기세 등등하게 보란 듯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허리춤에 팔을 얹음과 동시에 바로 알바생의 작은 방수 가방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무척 꼼꼼한 사람처럼 전화번호까지 확인을 한 나는 운 좋은 줄 알라는 표정으로 김희철을 지나쳤다.
“엄마한테 전화 왔다는 거, 거짓말이지 김서연.”
“삼촌이 자꾸 채신머리없게 구니까.”
“이게!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서는.”
“그 오빠가 삼촌 구한다고 발이랑 손 주물러 주고 인공호흡도 했어. 삼촌은 계속 누워있느라 아무것도 몰랐잖아!”
하마터면 내 몫으로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릴 뻔했다. 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큰 눈을 번득이던 김희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기절하기 직전, 눈앞으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쭉 뻗어 들어오던 커다란 손도. 깨어나자마자 빨간 반바지 김희철의 맹비난을 듣느라 구조되어 살아 있는 내 처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왜 이렇게 물에 관련된 옛말들이 하나같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을까? 내가 지금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 놓으라 했다 이 말이지?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기껏 구해주고 지랄할 건 뭐야?
-띠링
한심한 얼굴로 건너다보는 조카의 얼굴이 괜히 멋쩍어서, 급한 연락을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진지한 얼굴로 문자를 확인했다.
[계속 어지럽고 속 안 좋으면 병원 가세요. 젊어서 별 탈은 없겠지만. 병원비는 내가 내 드릴 테니까 -알바-]
갑자기 누나네 집 가는 길이 아득해졌다. 굳이 알바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할 텐데 꼬박 제 신분을 밝히는 김희철이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나이 또래도 비슷해 보였는데 괜히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말을 톡톡하게 쏘아붙여도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나의 상대적 막돼먹음 수치가 뉘 엿이 저무는 여름 태양보다 더 붉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아 죽을 맛이었다.
*
“누나, 나 돈.”
“맡겨놨어?”
“아이 진짜… 애들 데리고 수영장 가려고 그러지! 입장료가 있어야 들어갈 것 아냐.”
“김상준! 그저께 삼촌이랑 수영장 갔어?”
누나는 의심이 많다. 손을 벌리는 나를 대신해 신이 난 아들을 불러 세워 엊그제 우리의 행적에 대해 물었다. 순진한 조카가 혀를 빼쭉 내밀고 끄덕끄덕 고개를 위에서 아래로 흔들었다. 진실을 채근하는 모습이 꼭 저번 날 김희철의 전화번호를 빼앗듯 따던 나를 닮았다. 싫지만 우리는 남매가 맞다. 조카들은 나날이 까매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심심치 않게 찾는 수영장에서 태운 살결이 번들번들 검게 빛났다. 아무리 선크림을 잔뜩 발라 주어도, 강원도 산맥을 타고 찾아드는 뜨거운 햇볕엔 속수무책이었다. 그래도 물놀이에 맛이 들린 조카들은 누나를 들들 볶아댔고,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누나는 결국 입장료와 간단한 간식 사 먹을 돈을 챙겨 우리 셋을 밖으로 내 보내는 게 요즘의 수순이었다. 우리는 정말 그 수영장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었다. 다만, 셋이 돌아오는 길 슈퍼 앞 평마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아먹으며 한 약속은 절대 비밀이었다.
우리 개구멍으로 수영장 드나드는 건 엄마한테 절대 말하지 않기. 어기는 사람은 딱밤 100대. 그저 좋다고 히히 웃는 상준이와 다르게, 서연이는 누나와 똑 닮은 표정으로 이마를 찡그렸다. 거짓말을 하라고오? 나는 재빨리 아이를 구슬렸다.
‘삼촌 말 잘 들어봐. 우리가 그래서 수영장을 안 갔어? 갔지? 갔는데 그냥 개구멍으로 출입을 했을 뿐이잖아. 너네 엄마가 한 번이라도 상준이, 서연이 수영장 갈 때 어디로 들어갔어? 하고 물어 본 적 있어?”
“아니.”
“그러니까. 우리는 거짓말 안 했어. 그리고 너네 거기 일하는 빨간 반바지 삼촌이 우리한테 뭐라고 한 적 있었어?”
“아니…”
“거 봐, 삼촌이 말했지. 다 허락받고 다니는 거라고.”
빨간 반바지 삼촌 이야기가 나오자 뾰족한 김서연은 수그러들었다. 어린 눈에도 김희철이 우리가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묵인해 주는 게 보였을 것이다. 그야 물론 그 개구멍을 가르쳐 준 게 김희철이었으니까! 빨간 반바지 삼촌으로 호칭이 승격된 희철과는 이미 모종의 거래가 오간 후였다. 쪽팔려도 보상받을 건 받아야겠다 싶어, 조금 남은 흉통을 핑계로 병원에서 잘 뛰는 심장 소리를 듣고 나오던 날, 나는 김희철에게 연락을 했다. 그쪽이 너무 세게 흉부를 누르는 바람에 뼈가 아파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보따리를 뺏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연락은 단 이 주 만에 우리를 한 개의 파라솔 안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게 만들었다. 희철은 알바생이지만 알바생이 아니었다. 그 애는 이 야외 수영장 사장님의 아들이었고, 무임금에 가까운 용돈을 받으며 거의 억지로 수영장 안전요원 일을 하고 있었다. 이쯤 들으니 대뜸 나를 향해 짜증을 냈던 김희철의 기분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종일 뜨거운 여름 볕 아래 색 바랜 칠성 사이다 파라솔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불쌍했다.
그랬기에 희철은 깍쟁이 같은 서울 말씨를 쓰며 배상책임 보험이니, 손해배상 청구니 일을 크게 키우는 뭐 같은 손님(이 부분에서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넓은 아량으로 내가 이해하기로 했다)의 난동이 반갑지 않았다고 했다. 안전요원하라고 앉혀 놓았더니 민사소송이 웬 말이냐며 벼락처럼 불호령을 내리는 어머니의 얼굴이 선명했다고. 아무튼, 그래서 희철은 치료비를 청구하는 나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컨테이너에 앉아 입장료를 받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 들어올 수 있는 개구멍을 가르쳐 줄 테니 쌤쌤으로 치자며.
말짱한 내 몸으로 치료비를 뜯어 내기엔 걸리는 점이 많았다. 으르렁거려봤자 피차 곤란한 상황이었다. 나는 병원비 청구 대신, 희철이의 수영장 개구멍을 발바닥에 땀나게 기어 다녔다. 입장료 명분으로 누나에게 받은 돈으로 어린 조카들에게 매점에서 핫바를 하나씩 더 쥐여주면 나머지는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길 수 있었다. 상준이가 노란 머스터드 소스를 입 주변에 묻히고 삼촌! 하고 희철에게 뛰어들면, 희철은 제법 다정하게 조카의 입 주변을 닦아주며 나에게 욕을 씨불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서울 또라이 또 왔냐! 딱히 악의가 실려 있지 않은 말투였지만 건들거리는 상스러운 말본새에 나는 때마다 눈을 흘겼다.
튜브를 끼고 홀린 것처럼 조카들이 풍덩풍덩 물 위로 뛰어든다. 하얗게 퍼지는 포말이 따끔한 볕에 반짝 흩어졌다가 유유히 흘렀다. 이런 땡볕엔 얼기설기 쳐진 검은 차광막도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타 들어가는 발끝을 꼼질 거리며 더 안쪽으로 몸을 들여다 놓으니 그늘에 숨어있던 김희철이 파드득 몸을 털며 소리를 질렀다.
“야, 가까이 오지 마.”
“치사한 놈. 같이 좀 쓰자.”
무서운 우연이었다. 알고 보니 김희철은 나와 나란한 83년도 출생자였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되어 나는 친구의 파라솔 그늘을 점유하고 늘어져 있곤 했다. 누가 뭐래도 합법적인 땡땡이었다. 금방 반말을 주고받게 되는 사이가 되어 나란히 투닥대는 일이 잦아졌다. 무섭게 올라오는 지열도 김희철의 파라솔 아래라면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찜질방 다니는 걸 좋아하던 나는 일부러 등을 지져가며 누웠다. 신선놀음을 한다며 김희철이 혀를 차도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코가 알싸한 수영장 락스 냄새는 지금 누워있는 곳이 강원도인지, 어릴 적 다녔던 돌고래 스포츠 인지를 헷갈리게 했다.
“요즘 신선은 팔자가 좋네, 수영장에서 여가도 즐기고.”
“야 거기! 그렇게 장난치다가 다치면 아저씨가 이놈 한다!”
“이놈 아저씨, 요즘 애들이 그런다고 말을 들어요? 순진하기는.”
흐흥 코웃음을 치며 대꾸하니 김희철이 합 입을 다물었다. 희철은 은근히 애들에게 약한 타입이었다. 내 조카들에게도 그랬지만, 이 수영장에 다니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크게 뭐라 하는 경우가 없었다. 아까처럼 위험하게 장난을 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나는 그런 김희철을 골리는 게 좋았다. 굵직하게 잡힌 화려한 쌍꺼풀 라인 아래에 큼직한 눈,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어린 고객들을 감시하느라 꽉 다물려 화가 난 것 같이 틀어져 있는 입매도. 간혹 보호자로 온 손님들이 맥주를 과하게 잡수어 꽥꽥 고성방가를 하는 것은 절대 참아주는 경우가 없었지만, 덜 자란 아이들에겐 그저 말만 이놈, 이놈 하는 김희철. 낯짝을, 아니 나이를 가리는 김희철의 싹수가 웃기다.
“너 검사는 받았냐?”
“검사?”
“그때 가슴이 아팠다며, 내가 너무 세게 눌러서.”
“아아… 아니 뭐, 그냥 조금 뻐근하다가 괜찮아졌지.”
무슨 대화 주제가 이렇게 급작스러운지. 희철은 처음 내가 연락했던 날 들먹였던 가슴 통증에 대해 물었다. 그냥 미미한 통증일 뿐이었는데 돈 뜯어내려고 연락했다는 소리는 아무리 나라도 쉽게 꺼낼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늘 아래 반이나 검게 먹혀 들어간 김희철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딱 보면 가라인거 모르나. 생긴 것 답지 않게 순진하게 굴 때면 천하의 쓰레기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마주 볼 용기가 없어 그냥 잘빠진 코 아래의 인중과 입술에 시선을 던졌다. 큼직하니 시원한 마스크와 도톰하게 올라와 있는 입술이 확실히 얼굴과 잘 어울렸다. 어두운 그늘 아래 붉은 입술만 달싹인다.
‘그 오빠가 삼촌 구한다고 발이랑 손 주물러 주고 인공호흡도 했어.’
‘…발이랑 손 주물러 주고 인공호흡도 했어.‘
‘…인공호흡도 했어.’
갑자기 김서연의 말이 떠올랐다. 왜 저렇게 자꾸 시선이 가나 싶더니, 한번 부딪쳐본 입술이라 이거지? 볼우물을 따라 입체적으로 솟아오른 도톰한 입술 선을 보며 저절로 더듬더듬 손을 뻗어 내 얄팍한 입술을 매만졌다. 의식하지도 못하고 튀어나온 행동에 파라솔 아래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날 이야기는 꺼내 가지고! 갑자기 변태가 된 기분에 얼굴이 펑 타올랐다.
“어휴, 볕이 따갑네. 껍질이 막...”
너무 늦지 않았기 바라며 허둥지둥 군말을 붙였다. 잠깐 눈을 마주치는 동안 김희철은 화가 난 사람처럼 살짝 눈썹산을 올렸다가 금세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물장구를 잘 치며 노는 아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사실, 김희철의 매서운 인상 때문에 정말 화가 났는지는 내가 알 길이 없다. 근데 그냥, 그 때의 김희철은 좀 화가 나 있었던 것도 같기도 하고.
*
수영장을 제 집 드나들 듯 다니고 나서부터 주고 받는 문자의 수가 자연스레 줄었다. 할 말이 있으면 가서 얼굴을 보고 떠들면 될 일이어서 할 일 없이 남사스럽게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우니 빨갛게 타오른 팔 등이 보였다. 이번 주만 세 번을 다녔으니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도장을 찍은 셈이다. 원하지 않은 영광의 흉터가 온몸으로 내려 앉아 밤만 되면 화끈하게 몸을 덥혔다. 이미 코는 보기 싫게 코 껍데기가 벗겨졌지만 갈 때마다 세이브할 수 있는 돈을 생각하면 자꾸 그 곳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꽁 쳐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뭐.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나는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괜히 핸드폰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야, 수영 배우러 올래? -김희철-]
여섯 시? 딱 밥을 먹기 시작한 타이밍에 보냈던 문자는 일곱 시 반이 된 지금에서야 확인이 되었다. 아니 무슨 이 밤중에. 투덜거리면서도 슬금슬금 추리닝 바지를 꿰어 입었다. 아이들의 머리에 베긴 수영장 락스 냄새를 킁킁 확인하던 누나는 매형과 함께 아이들을 하나씩 맡아 씻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올 때 투게더 한 통 사와 건네면 딱히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조용히 나가 아파트 단지 안을 내달렸다. 급하게, [ㅇㅇ 간다. 딱 기다려] 하고 문자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녹음이 푸르고 뜨겁던 낮과 다르게 살짝 서늘한 여름밤의 기온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잡아 타고 한 번도 밤중엔 다녀본 적이 없는 이 낯선 동네를 훑었다. 괜히 차장의 풍경을 가깝게 내려다보고 싶은 생각에 버스 바퀴 위에 불쑥 올라있는 좌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들썩들썩. 이미 한바탕 퇴근 러쉬를 끝내 사람이 텅 빈 버스가 가볍게 출렁거렸다. 나는 괜한 해방감에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야, 이 자식아! 뭐? 수영을 가르쳐 줘?”
해방감은 개뿔. 그 말 다 취소야. 내 허리 위까지 올라오는 대형 솔을 내팽개치며 헉헉거렸다. 도착하니 눈을 댕그랗게 뜬 김희철이 물이 모조리 빠진 수영장 풀 안에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왜 왔냐니! 수영 가르쳐 준다며! 짜증을 내자 그 문자를 보낸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서 지랄을 하냐며 지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대답이 없길래 수영장 물을 모조리 빼버리고 바닥에 낀 물때를 청소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으이씨 뭐야, 야 나 집 간다? 투덜대는 내 뒤에서 풀 안에서 뛰어오른 김희철이 급하게 팔뚝을 잡았다. 이왕 온 김에 청소나 도와주고 가라며. 순 사기꾼이 따로 없다. 쉽게 보았던 바닥 솔질이 온몸을 땀으로 적실 만큼 고된 작업이었다. 내 방보다 조금 더 큰 풀장을 솔질하는데도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저릿했다. 이미 유아 풀장을 해치운 김희철이 많이 했냐며 얼굴을 쏙 들이민다. 썽을 내며 솔을 집어던졌다. 어휴, 박정수 성질머리하고는. 하며 타박을 한다.
“청소하느라 답장을 못 봤다고 몇 번을 말하냐 또라이야.”
“근데 일을 시켜?”
“아이고 깔끔하게도 잘했네. 놀고먹는 녀석이 생각보다 손끝은 야무지다?”
흉을 보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모를 말로 구워삶는 김희철을 고깝게 노려보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이미 땀으로 젖은 옷이라 아직도 물기가 남아있는 수영장에 주저앉는 건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앉은 김에 누웠다. 의외로 깔끔한 성격의 김희철이 또 시부렁거린다. 과자를 사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때 쓰는 아이처럼 벌렁 누웠다.
“아무리 그래도 바닥인데.”
“난 내가 치운 구석은 믿어.”
“응. 잘났다, 잘났어.”
산 입구 평평한 곳에 설치된 간이 수영장은 희철이네 선산에 딸린 놀고 있는 땅뙈기를 다져서 만든 시설이었다. 매년 여름 물만 받아 수질 관리를 해주며 쏠쏠하게 돈을 버는 재미에 희철이의 어머니는 일가족을 투입하여 여름 내 수영장을 운영한다고 하셨다. 산 아래께의 도는 바람이 제법 서늘했다. 어느새 마무리를 하고 곁에 다가와 마른 자리를 살피는 김희철을 억지로 잡아당겼다. 악 소리와 함께 조심성 없이 젖은 자리에 엉덩이를 적셨다.
움푹 들어간 야외 수영장 한가운데 누워 보는 경험이 평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파란 타일로 촘촘히 덧댄 구덩이가 쓸데없이 아늑했다. 약간 묏자리 누워있는 것 같기도 하고. 중얼대니 남의 업장에서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며 희철이 투덜거렸다. 학기를 끝내고 거의 바로 넘어왔지만 이렇게 무수한 밤하늘을 바라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산기슭이라 유난히 맑고 넓은 하늘에 자글자글한 별들이 흩뿌리듯 박혀있었다.
요즘 아직도 이렇게 별이 보이는구나. 커다란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와 엄마의 우주를 바라보는 아이의 기분이 이랬을까. 끝을 가늠하기 힘든 밤하늘이 본질적인 존재의 가치마저 뒤흔든다. 이래서 옛날 사람이 첨성대며 천문 관측기구를 만드는데 기를 썼구나. 밤 하늘 아래에 까마득하게 혼자 놓인 고독감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센티 해지는 감성이 금방이라도 한 오 년쯤은 후회를 할 대사를 칠 것만 같아 나는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누가 보아도 은하수라고 말할 수 있는 별의 무리를 지긋이 바라보니, 김희철이 몸을 반쯤 세워 나를 바라보았다.
“비켜, 안 보이잖아.”
“교신 중?”
“뭐래. 형이 충고하는데, 지금 한마디 까딱 잘못하면 흑역사로 남는다. 조용히 구경만 해.”
어차피 너랑 단둘인데 뭐 어때?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희철의 말에 문득 가슴이 울렁거렸다. 풀벌레가 찌르르 우는 이곳에 별을 보고 누워 있는 건 정말 나와 너뿐이다. 아니, 평생 놀릴 거니까… 기세에 눌려 우물거리자 김희철은 킥킥 웃으며 좀 더 얼굴을 들이밀었다. 달과 별빛을 받은 수영장의 타일이 번쩍번쩍 빛을 반사한다. 야 정수야, 보이냐? 죽이네. 성은 쏙 빼고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김희철이 어색해서 타일 바닥을 문지르던 손을 가지런히 배 위에 올리고 혼자 손깍지를 끼었다. 갈피 없이 흔들리는 손가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누운 탓에 목구멍과 일자로 위치한 심장이 입을 벌리면 알아서 데구루루 굴러 나올 것 같았다.
“어? 들었어 방금?”
“아, 또 뭐가.”
“지금! 또!”
느슨하게 바닥에 풀어져 있던 희철이 후다닥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쳐 잡고 귀를 쫑긋거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난다는 타령에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여름밤의 감성이 꼭 청량하고 밝으라는 법은 없다. 극장가만 가더라도 이 시기에 대목을 놓치지 않겠다며 비슷한 류의 공포 영화를 앞다투어 개봉하지 않는가. 장난기가 가신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김희철의 몸짓이 오히려 더 긴장감을 조성했다. 시원했던 타일 바닥이 이제는 저 깊은 지하 바닥에서 올라오는 싸늘한 한기처럼 여겨졌다. 야아, 장난치지 마! 덜컥 의식하기 시작한 공포가 목구멍을 좁게 조였다. 나는 얼른 김희철처럼 상체를 일으켜 세워 바싹 희철의 가슴팍에 붙었다. 이 차가운 공간에서 유일하게 따듯한 온도를 내고 있는 희철을 동아줄 마냥 꽈악 붙잡았다.
“와, 멧비둘기.”
“으악!”
꾸루룩 이상한 소리를 내며 푸드덕 나무 위에서 무언가 날아올랐다. 신기한 걸 봤다는 표정으로 나무 위를 가리키는 김희철이야 어찌 되던, 나는 머리만 숨기면 다 숨겼다고 안심하는 작은 소동물처럼 희철의 품으로 안겨 들었다. 꾹, 꾹, 구르르륵. 한 마리가 아니었는지 비행을 하느라 흔들린 나뭇가지에 밤 새들이 저마다 우짖었다. 짧은 울음소리가 끝나니 또 찌르륵 희미한 풀벌레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득하다고 느꼈던 것이 사실은 이 비어있는 풀장이 아니라 김희철의 손바닥이었나. 어깨를 바짝 끌어안은 포옹이 제법 단단하게 얽혔다.
나는 정확히 여기 바닥에 오늘처럼 혼자 잠겨 든 때를 기억했다. 물도 없이 달과 별빛만 그득한데도, 나는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또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때처럼 살짝 서툴러도 조심스럽게 건져내는 희철의 손길이 퍽 익숙했다. 물속에서 수면 위로 어룽대던 얼굴을 보았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드럽게 턱을 쓸어 올려 눈을 마주치는 희철의 얼굴이 타일에 반사된 빛으로 반짝였다. 그래, 분명히 이곳에서 보았던 얼굴이다.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하면 까무룩 잃어버린 기억이 다시 날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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